囊中之錐:낭중지추
상반기 돌아보기 본문
저번에 k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물이 빠지고 있는 중인가봐! (물든 것이)
축축 늘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또 그런 괴로움이 따라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진짜 가만히 있기, 축축 늘어져 있기, 릴렉스하기, 뭐 그런 것이 언제쯤 가능한 걸까? 아직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때때로 약간 가능하다. 진정 그것이 가능하기까지는 아주아주 많은 시간과 어떠한 작용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완전 가능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도 많이 안 만났다. 보고 싶으면 보고, 보고 싶은데 연락할 용기가 없으면 안 만나고, 불편하면 어색하게 웃기도 했다.
어떠한 사고의 중심이 '남'이 아니라 '나'가 되도록 노력해봤다. 나는 남이 보기에 자존감도 높고, 싸가지가 없고, 겁이 없고, 자기 자신을 애정하는 것 같다. 나는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사람이고 싶은가? 방향을 이렇게 돌려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아주 최근에 알아차린 부분이다. 자꾸만 '그런데 다른 사람은 이렇게 느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노력을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반영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이렇다는 말을 열심히 했더니, 상대방이 점점 관심을 잃는 것 같다.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방도 남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유용한 깨달음이었다. 사람들이 대화의 기술을 익히고 그룹을 만들어서 서로의 규칙을 만들어서 평등한 대화를 향해 시도하는 것을 일정 부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소통이 되는 대화가 이리도 어려운 일이군.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알고 있다'라는 표현의 함정에 빠져 있음도 일정 부분 '알게 되었다'...
내 이해 메커니즘 안에서 '알다'로 분류된 것은 대체로 > '실행/실천' 단계로 넘겨진다. 미실행/미실천/보류의 결과가 남기도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 '알다'는 '알고 있다'가 된다.
여기에서 '알다'는 깊은 이해, 공부, 파악 정도여야 할텐데 미친 정보량의 시대로 인해서 '사전적 정의 한 줄 읽는 정도'로 알고 넘어가는 것도 많고, 그 안에서 오류도 발생한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다'로 분류된 무언가들이 심지어 잘해내야 하는 것이 되어서.... 알고 있음에도 잘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끊임없이 또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잘 몰랐다든지, 오류가 있었다든지 여러 번 돌아보면서 고칠 수도 있다! <알고 있다>의 카테고리에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나올 수 없고, 해내지 못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그런 그런 그런 건 아니었다. 언어의 함정에 빠져버렸던 것...
늘 '언어'에 사로잡혀서 말을 잘 내뱉지 못하고, 남의 말에 상처받고, 내 말에 내가 발목 잡히고, 나는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언어 그 자체가 즐겁고 흥미롭지 않고 늘 무서웠다. 특히 문장, 문서, 활자...가 무서웠다. 지금도 무섭다. 책을 읽거나 새로운 지식 정보를 얻는 것도 무섭다.
나는 '모른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좋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모른다'라는 말만 하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살 수가 있나?, 또 그렇게 생각이 흘러간다. 그럼 그냥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아보기>라는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여기까지 적고 조금 기운이 빠져서 일시정지
다시 재생
자기긍정은 자기를 무조건 칭찬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자기존중, 자기연민, 자기사랑 ...?) 이라고 한다. 그게 어려운 이유는 '되고 싶은 나'의 상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대체로 외부의 영향을 받고 있고, 그러면 나는 대체로 나를 부정하게 된다.
그동안은 자기'긍정'을 잘못 이해해서 '이러이러한 내가 좋아', '저러저러한 나도 괜찮아' 같은 말로 자위해 왔는데 그것은 사실의 왜곡이다. 좋지 않고 괜찮지 않은 것을 긍정하는 것은 긍정이 아니다.....이런~
그럭저럭 인정중독, 자기긍정, 자기존중 같은 주제를 마주하고 있었는데
종종 즐겨 보는 (자막이 없으면 이해가 너무너무 어려워서 봐야 한다) <ゆる言語学ラジオ> 채널에서 2달 전 쯤 <自己肯定感と自己評価は別物>라는 영상이 올라오고 나서는 또 겁이 나서 채널에 접속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자기긍정이 뭐야~ '나'는 또 뭐야~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자기부정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부정'이라는 것이 또 진짜 자기부정과는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간단한 과정이어서...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시간이 흘러간다.
결국 내가 연구해야 하는 것은 '자기부정'일지도 모른다.
요즘 가장 위로가 되는 노래 : ハンバート ハンバート 「カーニバルの夢」 수록곡 여러 개...
01. 一瞬の奇跡
こんなことして何の意味があるの?
そんな頑張って君は何がしたいの?
嬉しい楽しい寂しい悲しい
どれも一瞬だけのこと
ぼくらたくさんたくさん拾って
ただ歳とっていく
君一人で何かできるとでも?
集まれば力が生まれるとでも?
嬉しい楽しい寂しい悲しい
どれも一瞬だけのこと
ぼくらたくさんたくさん拾って
ただ歳とっていく
ハッピーエンドなんて存在しない
終わりよければよし そんなことはない
嬉しい楽しい寂しい悲しい
どれも一瞬だけのこと
ぼくらたくさんたくさん拾って
ただ歳とっていく
嬉しい楽しい寂しい悲しい
どれも一瞬だけのこと
ぼくらたくさんたくさん拾って
ただ歳とっていく
愛しい恋しい気持ちいい虚しい
悔しい苦しい恨めしい
全て神経細胞間の電気信号なのだ
ぼくらたくさんたくさん拾って
ただ歳とっていく
02. ある日の来客
03. わたしは空っぽ
ささやいたそっと
抱きしめたぎゅっと
最後だけちょっと
泣いてみせて
さよならを言って
何度も手を振って
見えなくなるまで見送ってた
君みたいに無邪気にはもうなれないこと
本当ははじめからわかってたの
ずっと好きだよって 言ってくれたけど
ごめん
ごめん
物陰でそっと
抱き合ったぎゅっと
髪の毛がちょっと
くすぐったい
君の目は真っ赤
わたしは空っぽ
悲しいくらいに何もないの
何が悪かったのかとかそういうことじゃない
もっと早く出会ってもおなじこと
ずっと待ってるって 言ってくれたけど
ごめん
ごめん
空はもう真っ赤
影だけがのっぽ 肌寒くなって
腕を取った さよならを言って
何度も手を振って
見えなくなるまで見送ってた
見えなくなるまで見送ってた
04. In The Dark
おはよう 元気? 調子はどう?
ごめん急に 驚かせて
君の朝は ぼくの夜中
おはよう 元気? 調子はどう?
ここにいたい 君といたい
体ももう 薄くなって
時間がない 間に合わない
このままさよならしたくない
おはよう 月が綺麗だから
君の夢を 訪ねてみた
最近たまに 音が消える
おはよう 今日は何をしよう
ここにいたい 君といたい
体ももう 薄くなって
時間がない 間に合わない
このままさよならしたくない
暗い話はしたくないよ
楽しいことだけしていよう
君の話もっと聞かせて 今はただ
少しずつ視界がぼやけて
またさらに体が透けてく
それでも話が聞きたくて 黙ってた
ここにいたい 君といたい
夢しかない 会える場所は
時間がない 間に合わない
このままさよならしたくない
今しかない 明日などない
体ももう 消えかかって
ぼくは叫ぶ 君の名前
届けよ遠く君のもとへ
届けよ眠る君のもとへ
05. 夜の火
06. 寝ても覚めても
07. 君を見つけた日
08. トンネル
どこへ行くのかわからない
どこから来たかもわからない
行くも戻るもない道を
戸惑いながら歩いている
何がどうしてこんなことに
どこでどう間違っちまったのか
行くも戻るもできぬまま
途方にくれて座りこんだ
先の見えない日々に
押しつぶされそうで
ふざけんなって喚きながら
手当たり次第物を投げた
暗いところを歩いてた
誰かの呼んでる声がした
みんな泣いたり笑ったり
そうやってきみは生まれてきた
どうせ変わらないさと
つい流されそうで
忘れんなって噛みしめた
きみが生まれた朝のことを
どこへ行くのかわからない
どこから来たかもわからない
行くも戻るもない道を
戸惑いながら歩いている
歩いている
歩いていく
09. 恋はこりごり
10. あの日のままのぼくら
11. ノアの方舟
12. クリスマスの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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