囊中之錐:낭중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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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서서히 낮아지던 에너지 곡선이 작년 말 쯤 <현상 유지> 지점 아래로 내려갔고 다시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르락 내리락이야 계속 있어 온 움직임이었지만 다시 올라오려고 하면 어쩐지 다시 내려갈 일만 닥치는 것이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아침에 일어나기를 목표로 삼았고 그 아침에 일어나기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았더니 그럭저럭 목표에 도달한 듯 만족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나의 목표는 항상 너무 높은 곳에 있고, 그건 내가 일상적으로, 항상 도달할 수는 없는 정도인가보다. 얼마전 이선생이 옆에서 유튜브로 이동진 평론가 인터뷰를 보고 있었는데 대략 '그냥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봉준호 감독 같은 영화감독이 되길 원하는 것' 이런 말을 했다. 나 역시 '@@이 하고 싶다'라고 할 때엔 '그 분야의 최고인 누구누구처럼 @@이 하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적지 그런 큰 인생의 목표만 세워오다가 나는 일기도 못 쓰고 새해 계획도 못 짜고 집에서 밥 한 끼 못 해먹는 인간이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요즘 내 알고리즘에는 우울감을 대하는 방법, 우울증과 싸우는 사람들, 마음이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례 같은 것들이 올라온다. 그런 것들은 꽤나 도움이 된다. 무서운 디지털인간사회... 그런 컨텐츠가 넘쳐나는 만큼 그런 힘듦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도망치고 외면하며 수면 아래에서 칩거중. 그런데 자꾸만 해결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면 꿈에서 나는 그런 일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또 일어나서 괴로워함... 그런 반복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러한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일까? 누구도 나에게 요구한 적 없는 것 같은데, '해결해야 하는 인간'이 나의 목표인 것인지...
사실 목표가 높은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를 인정하고 차근차근 나아갈 길이라고 응시하면 될텐데 그게 어려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 문제가 된다. 당사자연구 자료를 번역하다보면 고민(어려움)을 찾기, 반복되는 패턴, 범인 찾지 않기(?)... 몇 가지 걸리는 표현/문장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참고하면 좋겠다.
며칠 전에 내 속에서 엄청난 분노가 떠오른 적이 있는데
1) 그 분노의 원인이 너무 별 거 아닌 것 같다(공감받지 못할 것이다)
2)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내가 아는 해결방법은 옳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안을 계속 들여다 보니 결국 내 목표가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었고, 다른 방식을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 때문에 순간적으로 열이 올랐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반복되는 나의 어려움 속에서 빠른 해결방법은 '의지할 수 있는 정답제공자'의 존재인데, 그런 것은 없다. 심지어 '나'도 아니다.
나는 내 연구가 좀 필요한 것 같다. 스스로 '나를 돕는 방법' (100% 나 혼자 내 문제를 짊어진다는 의미가 아님)을 찾아야 한다.
예를들면 그 안에는,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 안전지대를 찾는 법, 비상시 긴급처방 같은 것들이 들어갈 수 있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포착하여 기록하고, 나를 알고, 많이많이 연구해보자. 올해에는 그런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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