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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기

ㅈㅠㄹ 2021. 8. 16. 22:05

빠르게도 여름이 지나갔다. 입추를 넘기고도 한낮 더위는 여전하지만 아침 밤이면 선선하다. 매미 소리가 조금씩 옅어진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두 달이 가까워진다. 정신없던 초기에 비해서 요즘은 내 방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방은 좀 우울하다. 아직 기타를 꺼내지는 못했지만 칼도 꺼내들고 글이나 사진을 열어보기도 한다. 가을이 오면 기타를 만져볼 수 있지 않을까? 봄에 산 긴팔티를 입은 시간이 너무도 짧아서 여름내내 가을을 기다렸다. 가을 또한 짧겠지만 겨울이 있으니 괜찮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어보아야 한다,고 한다. 좋은 글은 좋은 글을 통해서 온다. 여기에서 '좋은'이란 내용이라기보다는  올바른 문장, 맞춤법을 말한다. 글은 나에게-어린시절로부터 쌓여- 있던 것과 새로운 경험(공부)으로 탄생한다. 경험이라는 것은 결국 관계를 통하겠지만 나는 관계맺기를 참으로 어려워해서 골치가 아프다. 날마다 다짐하고 무너지는 편이다. 지난주 우연히 듣게 된 사주팔자에서 내 관성이 낮은 편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다시 다짐하고 노력하면 될 일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말로 어렵다.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져 온 것을 다시 지우거나 무언가로 덮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살갗이 따갑다. 내장도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정당한 분노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 한편 위안을 준다. 이제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보다도 나에게 화가 나고 실망스럽다. 그 감정을 잘 들여다보면 변화가 두렵고 영원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고, 했던 과거로부터 현재 전체인데, 그럼 결국 '나'라는 대상도 화나거나 실망스런 존재가 딱히 아닌 것 같다. 나를 헛갈리게 하는 것들을 다 지워내다 보면 마지막엔 형체 없는 감정, 관념 따위만 남게 된다. 

물론 '나'는 너무나 작아서 그런 감정이나 관념 같은 것이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기 위해서 또 헛갈리는 것들을 찬찬히 지워가야 할 것이다. 헛갈리게 만드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눈물이 나거나 분노가 일면 헛갈리지 말고 흘리우면 될 일이다. 위로해주는 많은 존재를 인식하고 그 힘으로 나를 보듬어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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