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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조선 第 150 號 (1941年 7月) 본문

發信/日新又日新

성서조선 第 150 號 (1941年 7月)

ㅈㅠㄹ 2021. 12. 3. 17:25

<나의 천막직>

 

打作하는 소가 打作마당의 穀食으로써 배불릴수 있는것처럼, 傳道者는 傳道함으로써 衣食할 權利가 있다. 그러나 그權利를 스스로 辭退하고 晝夜로 天幕을 만드는 職業을 힘써서 自己와 믿 同勞者들의 糊口之策을 講究했다는것이 使徒바울의 生活方針이었다.
‘日本基督敎會’의創設者 植村正久氏도 創業始初에는 家庭敎師와 投稿執筆等으로써 ‘日夜로 勤勞’하여 敎會를 세웠다 한다. 傳道함으로써 衣食하는者만이 正統의 傳道者인줄로 뽐내려는信仰은 아마도 一種의畸形이 아닌가한다. 近日에 金重冕君의 ‘提議’가 있었으나 거기應하는者는 余輩의 豫言하였든대로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를爲하야 하나님께 懇求하였든 最後割引으로 決定된 義人의數에 未及하였다. 故로 우리는 무슨 모양으로든지 밤 낮 ‘天幕’을 製造販賣하여야 할者이다. 이일만은願컨대 다른 아무보다도 다소 사람 使徒바울을 본받고저 所願이다.

 

어제 저녁에 참말로 '일소공도'가 가능한가?, 이는 분명 공부만 하는 자가 일해보지도 않고서 내뱉은 말일 것. 이라고 동료들과 추측해보았다. 아마도 밤낮 없이 일(노동+학습)함에 지친 우리의 푸념.

41년도 성서조선지에 김교신 선생님은 위와 같은 생각을 적으셨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하고 어찌됐든 실행할 것.

 

*글의 출처 : http://www.bible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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